
풍월당 기획음반
라두 루푸는 말이 없다
피아니스트의 고요
말은 늘 한 발 늦는다.
음악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어떻게 드러낼 것인가보다
어떻게 사라질 것인가를 생각한
침묵의 피아니스트
라두 루푸가 남긴 20개의 음악적 기록은
침묵을 가로지르는 빛이다.
음반(2CD) 20곡
라두 루푸의 음색은 독특하다. 그의 피아노는 ‘타격’이나 ‘쓰다듬기’ 사이에 있는 갖가지 접촉이다. 강하건 여리건 둥근 물방울을 떠올리게 만든다. 아니 취기를 늘 어느 정도 머금고 있으니 둥근 와인 방울 같다. 흐름 속에서도 음들은 저마다의 개별성을 유지하고, 순간순간 살아 있는데도 매순간 사라진다.
루푸의 음악은 다정하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말을 건다. 어쩌면 그의 세계에 불특정 다수란 존재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나의 음악을 들을지도 모르는 ‘대중’을 상상하기 어려웠다. 그는 언제나 ‘너’를 위해 연주했다. ‘너’를 슈베르트와 만나게 해 주려는 마음. 저 옛날의 위인과의 만남이 아니라 영원한 그의 현존재를 ‘너’와 만나게 해 주려는 마음이 루푸의 연주 속에는 가득하다.
라두 루푸는 피아노를 치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장에프랑 바부제는 이렇게 그의 말을 전한다.
자신의 존재를 잊고 음악에 몰두하는 게 좋아. 음악과 악기와 자신이라는 3자가 융합하는 상태. 누가 누구를 위해 연주하는지, 그런 것에서 멀어져 보는 거네. 원래는 피아니스트가 피아노라는 악기를 써서 음악을 연주하는 거겠지만, 어쩌면 음악이 피아노를 쳐서 피아노가 피아니스트를 위해 음악을 연주해주는 건지도 모르지.